민유중(1630~1687)선생은 조선 제19대 숙종의 왕비인 인현왕후의 아버지입니다.
효종 원년(1650) 과거에 급제한 뒤 승문원을 거쳐 전라도 관찰사, 형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조선시대의 문인이었고, 숙종 7년(1681)에 민유중의 차녀가 숙종의
계비(인현왕후)가 되며 여양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민유중은 노론의 중진으로 경서에 밝아 명망이 높았습니다.
민유중의 묘는 1986년 여주시 향토유적 제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명성황후생가유적지 뒤쪽 구릉에 자리 잡고 있으며 묘소로 가는 길목에 민유중의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민유중 큰아들인 민진후가 비문을 쓰고 둘째 아들 민진원이 글씨를
썼습니다. 기단석의 몸통은 거북이 형상이며, 머리는 용의 모양으로 오른쪽으로 틀어져
묘소를 향하고 있습니다.
명성황후탄강구리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1호
명성황후탄강구리비는 조선 제26대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1851~1895) 태어난 마을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비석입니다.
명성황후가 어렸을 때 글공부를 하던 건물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으며 화강암으로 된 비
앞면에는 「명성황후탄강구리(明成皇后誕降舊里)」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광무팔년갑진오월일배수음체경서(光武八年甲辰五月日拜手飮涕敬書)」
(광무 8년 갑진 오월 어느 날 엎드려 눈물을 삼키며 공경히 쓰다)라고 쓰여져 있어 1904
년(광무8)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명성황후 순국숭모비
명성황후는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 건청궁 내 옥호루에서 일제에 의해
시해당했습니다.
1981년 건청궁 내 동쪽, 구릉지에 세워진 명성황후 순국숭모비는 건청궁의 복원과
개방으로 이전 대상지를 물색하던 중 명성황후 시해 112주기를 맞이하며 2007년 10월 8
일 명성황후생가유적지로 이전했습니다.
하마비
하마비는 이 비석 앞을 지날 때는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비석입니다. 대개 왕이나 장군, 고관의 출생지나 무덤 앞에 세워져 있는데 근처에 민유중
선생 묘와 명성황후 생가가 있어서 이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이곳에 하마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석의 표면은 6.25 전쟁의 탄흔으로 일부가 훼손되었습니다.
명성황후 추모비
명성황후를 추모하기 위해 명성황후 기념관 앞에 세운 추모비입니다. 2개의 직사각형은 과거와 현대를 상징하는 기둥이며 좌측 상층부에 빛나는 태양은 우리 민족사에 길이 빛날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추모비의 뒷면에는 2001년 3월 김남주가 짓고 구자송이 쓴 추모시가
새겨져 있습니다.